중세전기_악학궤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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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02-11 00:0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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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<악학궤범>을 주로 편찬한 사람은 그 다섯 사람 중에서 서문을 쓴 성현이라고 짐작된다. 악학궤범의 찬정이 동기는 당시 장악원의 의궤와 악보가 오래되어 헐었고, 요행히 남은 것들도 모두 소략하고 틀려서 그것을 수교하려는 데에 있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다. 그런데 성현의 <용재총화>,<허백당시문집>은 그가 다섯 사람 중에서 한문 문장에 가장 능숙하다는 것을 보여주고, <악학궤범>의주를 한문으로 쓰는데 가장 적임자임을 수긍케 한다. 이렇게 음률을 잘 아는 성현이라야 <악학궤범> 권1의 삼분손익법에 의한 율관 제작과 제향의 종류에 따라 강신악에 쓰이는 특정 율의 적용에 대한 주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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악학궤범 문학 고대문학 / (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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악학궤범 문학 고대문학
악학궤범은 弘治 6년 8월 상순에 찬정되었다. 의궤와 악보를 보정하라는 왕명을 받은 사람은 장악원 제조 유자광, 예조판서 성현, 장악원 주부 신말평, 전악 박곤과 김복근이었다. 그 외의 예들로서 성현이 <악학궤범>
설명





중세전기_악학궤범
다. 성현은 예조 판서 겸 장악원 제조로 있을 때 Japan인과 여진인의 객인 연향과 china(중국) 사신의 연향 같은 때에 빼놓지 않고 음악을 들었다고 용재총화 권2에 썼다. 성현은 교리로 있을 적인 성종 6년 10월 벌써 음률을 잘 아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도 뽑혀 장악원도 겸임하며 습악일에 사진토록 명을 받았다. <악학궤범>의 찬이라는 것은 그 내용으로 보아 기존 문헌을 모아 놓고 거기에다가 ‘안’이라고 쓴 주를 붙인 것에 불과하다. 그러나 원고의 인간(印刊) 연대는 그 서문에도 없고 <성종실록>에도 안 보인다. 이러한 그의 公式 연향의 체험이 <악학궤범> 권2의 악기진설 등의 주를 쓸 수 있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.